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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안타까움성

시놉시스

 

 

   무대는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의 한 시골 마을. 소년 디미트리는 늙은 조모의 집에서 결혼에 실패한 아버지와 그리고 역시 인생의 실패자인 세 명의 숙부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들의 생활이라 할라치면 매일 밤 단골 술집에서 똥오줌 지릴 때까지 엄청난 양의 술을 마셔대며, 걸리는 대로 쌈질을 하고, 도박으로 밤을 지새우다 돈이 떨어지면 한동안 일용직으로 떠돌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베르휠스트 집안의 일원임에 자긍심을 잃는 법이 없었다.

 

 

에피소드 I : 아름다운 아이

 

 

   어느 날, 이 마을에서 태어난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고모 로지가 딸인 실비를 데리고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이 집으로 돌아온다. 고모부의 폭력을 피해 도망 와 있던 그녀들은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은둔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사촌 실비의 창백한 얼굴은 하루가 다르게 시체처럼 변해갔다. 그리하여 디미트리와 이 집의 남자들은 소녀의 기분전환을 위해 술집이라도 데리고 가자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억지로 실비를 데리고 나온 그들이 들어간 가게에는 고모 로지가 염려하던 안드레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편, 그 가계 여주인의 딸들인 성장 지체의 못난이 쌍둥이 자매는 도회지에서 온 아름다운 소녀 실비를 질투해 짓궂게 들이댄다.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실비는 급기야 태어나 처음으로 맥주를 단번에 들이켜고 취해버리고 만다. 안드레는 취한 실비에게 비장의 쇼를 피로 하는데. 그것은 말기 암 환자인 그가 병원에서 달고 나온 인공항문으로 대변을 처리하는 모습이었다. 안드레 덕분에 기묘하게도 기분이 풀린 실비는 숙부들과 함께 들떠 요란스레 소란을 피우다 취해 쓰러져버린다. 어찌어찌 집에까지 도달한 일행, 엄마인 로지는 중학생인 딸이 술에 취해 쓰려져 있다는 사실보다 안드레와 그녀가 만나버리고 말았다는 것에 분노한다. 안드레는 실비에겐 비밀이었던, 실비의 아빠였던 것이다…………

 

에피소드 II – 온리 더 론리

 

 

   어느 날 갑자기 집에 차압 딱지 압류가 들어온다. 즈바런 숙부가 도박으로 진 빚 때문이었다. 불안에 떨고 있는 남자들을 뒤로 한 채, 집행관은 집안에 한 대 밖에 없는 텔레비전을 주목한다. 하지만 남자들에게는 그 날 텔레비전을 압류당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절명의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 날 밤 그들의 영원한 스타인 로이 오비슨의 부활 콘서트가 텔레비전에서 생중계되기 때문이었다. 오늘밤만이라도 기다려 달라고 사정하는 남자들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집행인은 의기양양하게 텔레비전을 빚 대신 들고 나간다. 그리하여 텔레비전을 잃어버린 남자들은 어떡해서든 그날의 생방송을 보기 위해 백방으로 수를 간구하기 시작한다.

 

   노력의 결과, 결국 이 집의 남자들에게 텔레비전을 보여줄 집을 하나 발견하는데. 막상 그 집을 방문한 남자들은 놀라고 만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자신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이란인 일가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는 말 할 것도 없이 모국어조차 제대로 말 할 줄 모르는 남자들이었지만 그들은 열심히 이방인과 소통하려 노력한다. 모두 로이 오비슨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눈앞에서 펼쳐지는 로이의 모습과 그 노래에 감동한 아버지의 눈에선 눈물이 멈출 줄 모른다. 로이의 음성이 불러일으키는 인생의 비애에 감정을 억누를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 집의 주인인 이란인 역시 그들 옆에서 같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다른 이들의 놀람과는 상관없이, 말도 통하지 않는 두 명의 남자는 마치 오랜 친구라도 되는 양 서로의 인생과 고난을 읊기 시작하는 것 이었다………

 

에피소드 III – 투르 드 프랑스

 

 

   심야에 걸려오는 한 통의 전화. 조모는 잠을 깨우는 전화소리에 노여워하며 수화기를 드는데 상대는 경찰이었다. 주인공의 숙부인 헤르만이 마을의 술집에서 열린 음주대회에 출전하여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형제들이 구급차에 실려 가는 헤르만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정신을 차리는 헤르만, 남자들은 대회에서 우승한 형제의 쾌거에 열광한다. 하지만 그런 헤르만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막내 포트럴은 왠지 억울했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자신이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포트럴은 독자적인 음주대회를 열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것은 투르 드 프랑스에서 영감을 얻은 궁극적인 의미에서의 음주 대결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모는 대회를 계획하는데 몰두해있는 포트럴의 모습에 감동하여 그에게 고액의 경주용 자전거를 선물하기에 이른다.

 

 

 

   드디어 엄선된 5인의 술꾼들이 참가한 가운데 경기의 막이 올라간다. 20시간에 걸친 목숨을 건 사투 끝에 모든 종류의 술을 다 털어버린 대회장은 그들의 토와 술과 소변으로 흥건해져 있었다. 몇 명의 탈락자를 내면서 레이스는 최종 코스를 향해가고 있었다. 숙적인 가죽잠바의 사나이와 대결에서 패배를 예감한 포트럴은 생명을 건 도박에 몸을 맡긴다. 마치 죽기 위해 마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술을 마시는 그들의 모습을 숨죽이고 바라보고 있는 남자들… 다시 심야. 전화벨이 울리고 포트럴이 혼수상태에 빠져버렸다고 경찰이 전한다. 반복되는 수면방해에 격노한 조모는 전화를 던지듯 도중에 끊어버린다.

 

에피소드 IV – 민족학자들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를 받는 이는 이제 성인이 되어 있는 작가 디미트리다. 전화는 막내 숙부인 포트럴로 부터였다. 안트워프의 민속학자들이 이전 술집에서 아버지들이 부르던 노래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능하면 녹음하여 기록으로 보존하고 싶다는 얘기다. 이에 격렬한 반감을 품게 되는 디미트리. 민속학자 나부랭이들이 도대체 뭘 안다고? 이미 저 세상으로 가버린 아버지에 대해, 아니면 오욕으로 점철된 자신의 소년시절에 대해 도대체 뭘 안다고 덤벼든단 말인가? 모든 것이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제 와서는 아무도 끝까지 외워 부를 수도 없어져버린 노래들이었다. 디미트리가 협력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안 포트럴은 치매에 걸려 이제 요양원에 수용되어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조모를 보러 가자고 제안 한다.

 

   의도치 않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디미트리는 바닷가 묘지에서 상상 속의 아버지와 재회한다. 결혼생활의 파탄과 술에 절어 있는 현재 자신의 모습은 언젠가의 아버지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요양원 대면실에서 만난 조모는 이젠 가족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민속학자와 숙부들은 조모가 노래를 기억해내도록 기를 써 보지만, 그녀는 입을 다문 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노래를 떠올리려 애 태우던 그들은 요양원에서 술판을 벌리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시도는 부질없이 끝나버린다. 학자들이 떠나버린 후 디미트리는 조모 혼자 미소 짓고 있는 것을 눈치 챈다. 미소와 같이 조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바로 그들이 어떻게 해서든 기억해내려고 애 쓰던 바로 그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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