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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

tHREE SISTERS

by Anton Chekhov

 30미터에 육박하는 런웨이 무대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세 자매>...

 

거대한 무대를 가득 채우는

현대인의 고독과 단절의 드라마’  !

체홉이 그려내는 등장인물들은 어딘가 베케트가 그려낸 부조리극의 그것들과 닮아 있다. 그들은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상태를 살아가고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일상적’인 수다들은 거의 대부분 상대를 무시하고 있던가, 아니면 전후 맥락을 무시한 돌발적인 것들이다. 말하는 이는 듣는 이의 감정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주장, 심정을 토로할 뿐이고, 듣는 이도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모르거나, 혹은 들을지라도 자신에게 편리한 부분만을 맘대로 해석해서 받아들일 뿐이다. 이러한 부조리극적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와 병적인 관계에서 그들은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는 도망쳤다할지라도 다시 그 닫힌 관계 속으로 돌아와 버리고 만다. 왜일까? 아마도 그들은 커뮤니케이션의 불가능성을, 상호이해의 불가능성을 아플 정도로 알면서도, 그런데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한 기대를 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이해해 줄 것이라는 부질없는 기대, 언젠가는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이해받고 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하는 부질없는 희망을 그들은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배반당하면서도, 또는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이런 지옥 같은 관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겨져 있던 ‘희망’이라는 단어가 그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외부 세계가 (혹은 역사가 혹은 자본주의 경제가) 끝으로 다가와 이런 그들을 짓눌러 부셔버린다. 무정히 일절의 반론의 여지도 없이. 이러한 체홉의 모습은 더없이 현대적이다.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서, 나는 체홉 연극의 특징의 하나인 노스탈지와 시정(詩情)을 삭제해버렸다. 체홉의 연극 세계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19세기 말 러시아의 농후한 노스탈지한 분위기는 체홉 연극의 최대의 매력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노스탈지의 베일은 등장인물들의 갈등이나 욕망, 그리고 숨겨진 본심을 감춰버리는 요소이기도 하다. 체홉 특유의 시정도 마찬가지다. 혹시 체홉이 그려낸 인물들은 우리들이 상상했던 이상으로 다이나믹하고 현대적인 갈등과 대립의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마음 상냥한 그들은 이러한 감정을 절대로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감정을 타인의 눈 혹은 자기 자신의 눈으로부터도 숨기려고 한다. 나는 이러한 그들의 비밀스러운 감정을 혹은 갈등과 욕망을 혹은 대립의 구조를 무대 위에 형상화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베케트의 부조리극을 통과해버린 현대인의 시점으로 그들의 모습을 잡아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의 <세자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과장되어 있고, 크든 작든 성격적으로는 뒤틀려져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쓸데없는 것에 고집을 부리고, 혹은 우스꽝스럽게 행동한다. 웃어도 좋다. 확실히 말해서 그들은 결점 투성이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필사적이고 (다른 사람들에겐 바보스럽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들 나름의 꿈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려고 한다. 이러한 그로테스크하고 골계적인 사람들의 인생 댄스는 역사상 ‘어떤 거대한 사건’ (이것은 러시아 혁명일수도 있고, 2차대전일 수도 있다. 어쩌면 IMF일 수도 있고, 9.11테러일지도 모르겠다.)이 그들을 짓눌러버릴 때가지 계속될 것이다. 제발 웃어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은 불쌍히 여겨 주셨으면 좋겠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014.version Trailer

2011.version Trailer

 

         "쯔카구치 토모 연출가의 ‘세 자매’는 원작의 문학성에 연출가만의 시선을 독특하게 녹여냈다. 정말 파격적이었다. 30m에 육박하는 긴 런웨이 무대와 마이크만으로 인물의 속내를 영특하게 풀어냈다.

          시작부터 그렇다. 시상식을 연상케 하는 연단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 있는 올가가 있다. 올가는 마치 수상 소감을 밝히는 듯 모스크바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꺼내 놓는다. 이리나가 미소 지은 채 바라보고 있다 .이후 등장한 마샤는 마이크를 잡고 멜랑꼴리가 묻어나는 샹송을 끈적끈적하게 부른다. 모스크바 회귀에 대한 의구심, 따분한 일상에 대한 우울함을 느낄 수 있다.

          모스크바에서 베르쉬닌 중령이 왔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인생과 철학을 논하기 좋아하는 베르쉬닌은 마이크를 잡고 인생을 논한다. 그리고 그 뒤로 등장한 마샤의 남편 끌르이긴은 좀 얄미운 행동을 한다. 한창 이야기중인 베르쉬닌의 마이크를 뺴앗아 버리더니 자신이 쓴 책을 자랑하고 마샤에 대한 사랑을 피력한다. 애처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심각한 상황마다 등장해 마샤가 어딨냐고 훼방을 놓는 점에서 눈치 없어 보인다.

          마이크는 안드레이와 나타샤 부부에게도 유용하게 이용된다. 부끄러움이 많은 나타샤가 도망가자 안드레이는 마이크를 잡고 큰 소리로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추후 마이크의 활용은 역전된다. 마이크는 나타샤가 집안의 권위자로 자리 잡는 유용한 기표로 작용된다. 특히 마샤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나타샤는 마샤가 버릇없는 말과 행동을 할 때마다 연단에 서 마이크를 잡고 잘못을 지적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타샤의 권위가 커졌다는 것은 안드레이 행동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초반에 마이크를 잡고 나타샤에게 고백을 하거나 모스크바에 대해 아련한 추억을 늘어놨던 안드레이는 후반에 다른 모습을 보인다. 런웨이 무대가 아닌, 나타샤와 세 자매의 압박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상공에서 스피커폰을 들고 쩌렁쩌렁 울부짖을 뿐이다.

          이것 이외에도 많다. 발칙한 발상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다. 속내를 읽어낸 메타포들이다. 안드레이와 나타샤가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결혼생활이 시들시들해지는 모습이 수건 하나로 표현됐다. 아기 모양을 한 수건을 안고 행복해 하던 두 사람은 어느새 수건을 서로에게 던진다. 펼쳐진 수건은 탁탁 털려 빨랫줄에 널린다. 이리나가 솔료늬이의 구혼을 거부하기 위해서 사용한 박멸제도 마찬가지다. 박멸제로 솔료늬이를 쫓아낸 이리나에게 나타샤가 다가온다. 나타샤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방을 양보하라고 요구한다. 이리나가 거부하자 박멸제를 빼앗아 이리나 얼굴에 겨냥한다. 세 자매 앞에서 살랑거리던 나타샤의 이중적인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이다.

           쯔카구치 토모는 긴 런웨이 무대에 마이크를 올려놓고 속내들의 향연을 펼친다. 마음에 꽁꽁 봉인된 속내들이 배우와 소품을 만나 표표히 떠오른다. 속내가 보인다. 속내를 만나고 나니 명확해 진다. 만만치 않은 인생, 끊임없이 속내를 토로하면서도 다시 살아가는 군상의 모습이 보인다."

 

<안톤 체홉 해설서> 김세운 (p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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