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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가

역사와 실재, 혹은 그 하염없는 실천을 향하여

2019 4.26 - 28

국립극단 소극장 판

Photo by

하윤영 / 양대근 / 권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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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훈

서정식

김수정

강민규

조영민

김보경

문지홍

강정한

박은영

김유림

Anupam Tripat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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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쯔카구치 토모 

조명디자인    이경은 

무대디자인    Shine-Od

음향디자인    류가혜

'판' 무대 위에 울려 퍼지는 노동가

연출의 판-작업진행중’ 두 번째 쇼케이스인 쯔카구치 토모 연출의 <노동가: 역사와 실재, 혹은 그 하염없는 실천을 향하여>(이하 <노동가>)가 4월 26일부터 28일까지 소극장 판에서 공연한다. 쇼케이스를 약 3주 앞두고 연습실에 다녀왔다.

<노동가>는 한국 현대사 속에 존재해왔던 노동의 노래들로 한국 노동의 역사를 그려낸다. 공연은 노동운동을 부정하는 한 사회학자가 강의를 하는 와중에 노동운동을 긍정하는 코러스들의 난입으로 시작한다. 코러스들은 합창하며 등장하는데 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바로 박정희 정권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한국 현대사 속에서 존재했던 노동가들이다. 공연은 노동가를 통해 한국 현대사 속 노동의 역사를 집약해내며, 둘로 크게 나뉘는데 전반부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의 노동을 다룬다면, 후반부는 IMF 이후의 노동을 다룬다. 시작될 때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사회학자)과 긍정(코러스)이라는 대립의 이미지는 공연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포인트이다. 이는 한국 현대 노동운동의 역사를 이미지화하기 때문이다.

노동가와 코러스

전반부는 1990년대 이전의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군사정권과 노동의 대립을 그렸다. 코러스의 합창으로 시작, ‘단결 투쟁가’와 같은 노동가들이 울려 퍼진다. 이 코러스를 보고 있자면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가 연상된다. 극의 전개를 도와주며,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관객과 등장인물의 입장을 대변하는 비극의 코러스와 마찬가지로, <노동가>에서도 코러스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무대장치 없이 ‘코러스’ 만으로 극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코러스’의 노래는 노동자인 주인공의 심정을, 때로는 관객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코러스가 합창하는 노동가는 장면과 장면을 이어줄 뿐 전체 공연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 장면을 소개하자면, 사무실에서 열심히 노동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려낸 장면을 꼽을 수 있겠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노동하던 이들은 점차 전화기 선에 감겨 질식하다가 종국에 모두 쓰러지게 된다. 삶을 위해 열심히 노동한 대가가 죽음이라

는 점에서 현대의 노동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비인간적인지를 이미지적으로 표현해내었다.

 

후반부는 IMF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노동사를 다룬다. 이 시기 대립의 주체는 바로 자본과 노동으로, 대기업으로 표상되는 자본이 나라를 지배해가는 과정 속에서 노동운동가들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국가 경제의 위기, 대기업에 의한 국가 자본의 지배, 신자유주의에 따른 양극화의 심화에 따른 노동운동은 전반부에 그려진 것과 완전히 다른 전개를 펼치게 된다. 즉, IMF 이후 현대 노동이 생존과 더욱 직결된 모습을 극화한다. 자본가와 대립하지만 자본가가 나누어주는 라면을 먹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모순, 굶주린 이들이 라면 하나를 찾아내 나누어 먹으려하지만 결국 가스가 없어서 무용지물이 되는 등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생존수단들이 사라진 시대를 그려내었다. 결과를 선취하자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의 노동자들 내부에서의 분열처럼 노동자들은 결국 힘을 합쳐 연대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다소 소극적이었던 합창단이 공연이 진행될수록 점차 투지를 갖게 되면서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과 긍정의 힘의 줄다리기가 극대화된다. 예컨대 코러스를 이끄는 지휘자는 긍정(민중의 지도자)과 부정(자본가)으로 양립하는데, 코러스들은 지휘자에 따라 노동가 또는 일반 대중가요를 부르며 줄다리기하는 것이다. 노동가와 가요 사이를 오고 가는 코러스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 연대하여 조직화하는 민중들과 지배계층에 의해 조직화되는 민중들의 대립을 표상하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은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언제나 현 체제에 속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해주기도 한다. 이렇듯 공연은 전반부의 군사정권과 노동, 후반부의 자본과 노동이라는 대립을 이미지화 하여 우리나라 노동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연출은 결코 노동에 대한 자신의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토모 연출의 <노동가>가 그리스 비극을 닮았다면, 과연 그 끝은 어떻게 끝날까? 과연 다음 세대의 노동가는 무엇일까?

에필로그, 그리고 당신

일찍이 관객들이 연극 행위에 스스로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의식을 바꿔나가야 함을 주장한 브라질의 연극학자 아우구스토 보알은 그리스 비극을 논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비판하였다. 비극은 대중을 위해 공연했다는 점에서 민주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이 지배계층의 가치관을 반영한 것이기에 귀족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 비극은 결국 지배계층의 가치관을 전파하고 민중으로 하여금 현존하는 불평등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이를 그대로 수용하게 만든다. 보알은 그 원인을 관객이 감정이입과 카타르시스를 얻는 대신 자신의 권한을 배우에게 완전히 위임함으로써 대신 행동하고 사고하게 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관객이 주체가 되어 연극 행위를 스스로 변화시킬 것을 주장한 것이다.

두 번째 연습실을 방문하던 날, 배우들은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디어를 내며 장면을 만들고, 수정하고, 없애고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었다. 토모 연출은 소극장 판의 무대 위에 한국 현대 노동사의 비극, 애환을 그려내면서도 그 사이에 코믹한 장면을 연출하고, 배우들에게 노동가를 뮤지컬, 힙합 등의 익숙한 멜로디에 입혀 부를 것을 요청하는 등 관객들이 감정이입하는 것을 방해하도록 의도한 듯 보였다. 결국 노동에 대해 관객 스스로 사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답이 정해지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

‘노동은 무엇인가’,

‘오늘날의 노동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앞으로의 노동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연습실을 나서는 순간에도 공연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공연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공연을 완성시켜주는 것은,

공연이 던지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게 될,

판의 무대 맞은편에 있는 바로 ‘당신’일 것이다.

글 / 황아람

 

[출처] ‘판’ 무대 위에 울려 퍼지는 노동가 ― <노동가> 연습실 스케치|

작성자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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