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쯔카구치 토모

인터뷰

대담자  부새롬씨

     한국에서 작업하신지 얼마나 되셨죠?

 

토모    대학로 데뷔작은 2014년에 공연했던 <사물의 안타까움성>이고, 지금 재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원작 소설이 있는데 제가 일본어로 각색하고 아내가 한국어로 번역을 해서 만들었죠. 그리고 ‘토모즈 팩토리’라는 극단을 만들어서 작년에 혜화동1번지에서 주최한 ‘세월호 프로젝트’에 <공중의 방>이라는 작품으로 참여했어요. 아내가(손상희) 극단 대표인데, <공중의 방>은 아내가 쓰고 연출하고 저는 드라마터그로 참여했어요. 올해 들어와서 1월에 <바냐아저씨>를 제가 연출했고요.

 

뿌     이 질문은 정말 많이 받으셨을 텐데, 어떻게 한국에서 작업을 하게 되신 거예요?

 

토모     한국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욘사마가 유명해서, 그 정도만 알았어요. 일본에서 대학원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아내를 만나서 사귀게 됐고, 같이 비엔나를 갔어요. 연극 공부를 하러 갔는데, 결론적으론 어학만 1년 했죠. 그때는 아직 결혼 전이었는데 장인어른이 암에 걸리셔서 1년 정도 밖에 안 남았다는 진단을 받은 거예요. 독일어 공부하는 것도 힘들고, 차라리 한국으로 갈까, 생각했어요. 결혼하고 한국에 와서 장인어른 하고 마지막 1년을 같이 보냈죠. 사실 다시 일본에 갈 생각이었어요. 근데 살다보니까 편안하고 뭔가 정서도 잘 맞고 그래서 이대로 여기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고 저도 모르는 새에 12년 정도 살게 된 거죠.
    아내가 한국연극계가 세계 수준이다, 사람도 좋고 연극도 재밌다, 일본에서 하는 연극보다 좋고 잘 한다, 그런 거예요. (웃음) 그거 믿고 왔다가 이렇게… (웃음)

 

     속으셨네요. 일본 연극이 더 세계적일 텐데.

 

토모     잘 모르겠어요. 일본엔 당시에 미니멀리즘이 유행했어요. 지금도 그런 거 같고. 근데 저는 미니멀리즘에 의문이 있었어요. 그 때 아내가 한국 연극 동영상을 보여줬는데, 한국배우들이 연기 하는 걸 보면서 언어 자체가 갖고 있는 힘과 에너지를 느꼈어요. 거기에 매력을 느꼈어요.

     일본에서도 대학 때 연극을 전공하신 거예요?

 

토모     일본은 대학교에 연극 관련 학과가 별로 없어요. 있다고 해도 이론을 배우는 과이고 실기 학교는 많지 않아요.
  저는 문학 전공이었고, 동아리는 각 학교에 있으니까 거기서 연극을 했어요. 실기를 배우려고, 일본에 몇 개밖에 없는 실기 가르치는 학교 석사과정에 들어간 거죠.
  일본에서는 전문 교육을 받고 배우가 되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유명한 극단에 배우 훈련소 같은 게 있는데 그런 데서 훈련을 받거나, 대부분 학생 동아리에서 출발하죠. 프로페셔널 극단과 아마추어의 차이가 크지 않아요. 제 친구 중에 작가 겸 연출하는 친구가 있는데 20대 후반에 처음으로 셰잌스피어를 읽어봤대요. 그 친구가 충격 받았다, 셰잌스피어 걔 되게 잘 쓴다, 그랬어요. 전 그 친구한테 충격을 받았죠. (웃음)

 

뿌     그럼 동아리에 들어갈 때부터 연극을 해야겠다, 생각하셨던 거예요?

 

토모     제가 오사카 출신인데, 부산 같은 곳이에요. 연극을 하려고 도쿄에 대학을 골라서 갔어요. 고등학생 때 친구가 연극을 되게 좋아했는데 거기에 영향을 받았죠.

 

뿌     일본에서는 연극하면 배 안 고파요?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토모     배고프죠. 근데 일본은 아르바이트를 해도 한 달에 20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으니까요.
  일본은 한국에서 작업하는 거랑 좀 달라요. 학생 동아리에서 연극을 하는 걸 예로 들면… 전체 예산이 총 천만 원이면 배우가 10명이 나오는 작품을 골라요. 그리고 한 달 정도 여유를 주고 각자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해서 한 명이 백만 원씩, 이런 식으로 참가비를 내서 작품을 만들었어요.

 

     좀 신기하네요. 동아리에서도 꽤 제작비가 들어가는 공연을 했었나 봐요.

 

토모     그건 프러덕션마다 다르죠.

 

    동아리인데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는 건가요?

 

토모     동아리와 프로가 별 차이가 없어요. 그냥 그 상태에서 인기가 생기면 프로 극단이 되는 거죠. 저희 동아리 경우는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공연을 했어요. 그래도 결국 오는 사람이 오고, 다 연극하는 사람들이 오고… 똑같아요.

 

    독특한 동아리 문화가 있네요. 대학원은 연출 전공으로 들어가신 거예요?

 

토모    전 처음부터 연출이외에는 아무 것도 안 한다, 그랬어요. 동아리에서도. 그래서 동아리 선배들이 연기 한 번도 안 해봤던 사람한테 어떻게 연출을 맡기느냐, 그러면서, 제가 연출을 하느냐 마느냐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어요.

     대학원 졸업하고 일본에서 현장 작업을 하셨어요? 아님 바로 비엔나로 가신 거예요?

     비엔나로요. 독일 연극을 볼 기회가 좀 많았어요. 그래서 독일에 직접 가서 유럽 연극은 뭐가 다른지 좀 경험하고 싶었는데, 뭘 잘못한 건지(웃음) 베를린이 아니라 비엔나로 가게 됐어요. 비엔나는 베를린에서 하는 진보적인 공연에 비해서 아주 보수적인 곳이었어요. “이게 몇 십 년대 연극이지?” 할 때도 있었고. 규모나 유명 배우들, 그런 건 최고 수준이었는데, 제가 가기 직전에 독일에서 온 유명한 예술감독이 그만뒀어요. 그때가 최악으로 보수적인 때였던 것 같아요.

 

     연극 공부를 하러 오스트리아로 갔다는 얘기는 많이 못 들어봤어요.

 

토모     실패죠. (웃음) 실패인데 어쩌면 성공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유럽 연극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유럽에 가서 보니까 무대에 돈도 엄청 많이 들어가 있고 배우들은 전통적인 독일어 연기법을 잘 보여주고, 극장도 대단하고, 근데 하나도 재미가 없는 거예요. 결국은 유럽에 가서 뭔가를 얻겠다는 거 자체가 망상이었고, 제가 봤던 공연이 좋았던 건 유럽 작품이어서가 아니라 그 연출, 그 프로덕션이 훌륭했던 거였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자기 표현으로 시작해야 된다는 걸 깨달았고, 나를 묶고 있는 어떤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죠. 필요했던 경험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뿌     한국에 들어와서 다시 연극 공부를 할 때까지 기간이 좀 있으셨잖아요. 그 때는 작업은 안 하셨어요?

 

토모     다른 일을 했어요. 좀 신기할 텐데 (웃음) 아내 친척분이랑 키즈카페를 했어요. 아이들 돌보는 선생님도 하고 일본어도 가르치는 일도 하고 그랬죠.
  연출은 결국 말로 어떻게 배우들을 설득하느냐의 문제인데, 한국에서 7년 정도 지날 때까지 자신이 없었어요. 지금도 일본에서 연출했을 때 쓸 수 있었던 어휘력의 30프로도 못써요. 그때는 한국말을 더 잘 못 했으니까, 이대로는 공연을 못 하겠다, 그랬었죠. 7년째 됐을 때 아내가, 이대로 가면 넌 안 된다, 학교를 들어가서 동료도 만나고 능력도 키워라, 그래서 다시 대학원에 들어간 거죠.

     외국인 연출이면 언어가 중심이 아닌 극, 몸이나 움직임으로 많이 표현할 수 있는 극을 할 것 같은데 토모상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사물의 안타까움성>도 이야기 중심의 극이었고요.

 

토모     배우가 말로 대사를 하잖아요. 저는 언어만으로는 만족을 못해요,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과 언어가 소리로 들려오는 게 같이 (맞물려서) 설득력을 갖고 있어야 해요. 저 같은 외국인도, 언어를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해를 할 수 있는 공연이 돼야하는 거죠. 독일어로 된 공연을 봤을 때도, 잘 만든 공연은 언어가 잘 안 통하더라도 잘 이해가 되고 다가왔어요. 기본적으로 연극이라는 게 그래야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언어는 소리고, 시각적으로 미적으로 의미 있게 표현하는 걸 강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대본에 슬랭 같은 표현이 나오면 잘 이해를 못해요. 배우들이랑 공동창작을 한 적이 있는데, 어떤 배우가 새로운 대사를 만들어왔는데 못 알아들었어요. 근데 다른 배우들이 즐겁게 웃으면서 그걸 보고 있길래, 그럼 오케이, 그랬죠. 공연 직전에 처음에 무슨 말 했던 거냐고 다시 물어봤죠. (웃음)

 

뿌     뉘앙스나 미묘한 표현에서 어려운 면이 있겠네요. 일본으로 가서 편한 모국어로 연극하고 싶다는 생각 안 하세요?

 

토모     이제 10년 넘게 여기 있어서, 일본에 가서도 나도 모르게 한국말 할 때가 있어요.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게 일본어인지 한국어인지 혼돈스러운 때도 있고. 모국어 능력도 떨어져가고, 이제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통역하다가 일본사람 한테 한국말 하고 한국사람에게 일본말 하고. (웃음)
  같이 하고 있는 배우들이 이제는 익숙해져서 소통이 더 편해졌어요. 특히 한 친구는 제 발음이 좀 이상해도 잘 알아 듣고 통역을 해줘요.
  근데 언어문제 말고, 외국인이 한국에서 연극 활동하는 게 어려움이 있어요. 거의 대부분의 지원금 제도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해요. 저는 한국에서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잖아요. 요즘 같은 시대에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정말 많을 텐데 제도가 그렇게 돼있는 거죠. 한 민간에서 진행하는 공모전에서도 창작자가 한국인이어야 한대요. 좀 웃긴 게 연출가는 외국인이 제가 해도 되는데 작가는 한국인이어야 한다고, 창작자가 작가인 거죠. 그래서 지원을 못한 적도 있어요. 제가 각색을 했던 작품이었거든요.

 

뿌     한국인인 저는 한 번도 생각을 못해봤는데 그런 어려움이 있겠네요. 근데 한국인도 지원금 받기가 쉽지 않아서…

 

모     그래도 일본보다는 나은 편이에요. 일본은 지원금 제도가 있긴 있는데 거의 다 큰 극단들이 받아요. 젊은 극단들이나 작은 극단들은 존재하는 지도 모르는 것 같아요. 그에 비하면 한국은 많이 열려있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뿌     한국이랑 일본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연극 교류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중간에서 역할을 하는 분들도 있고요. 토모상도 일본 연극인들이랑 교류가 있으세요?

 

토모     거의 없어요. 관심도 없고. 왜냐하면 저는 연출가고, 제 작품으로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있는 사람들한테 보여주려고 연극을 만드는 거니까요. 근데 같은 나라 사람 작품이라고 해서, 그 작품에 어떤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 작품이 좋으면 좋은 거지, 일본에서 왔다는 것 자체가 굳이 특별한 건 아니라서요. 일본, 독일, 미국, 어느 나라에서 온 작품이든 똑같죠.
  그리고 국제교류라고 그러는데 작품 몇 개가 왔다고 해서, 그걸 교류라고 하는 게 좀 쉬운 생각인 것 같기도 해요.

 

뿌     한국이랑 일본 극단이 같이 작업을 하기도 하잖아요.

 

토모     그게 특별한 일이면, 진짜 교류가 아닌 것 같아요. 그게 당연한 일이 되고,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어야 문화적인 대립이든, 이해든 교류, 그런 게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뿌     한국과 일본을 이야기하면, 역사 문제가 빠질 수 없잖아요. 작업하면서 이런 것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어요?

 

토모     일제시대나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는 공연이 있잖아요. 거기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을 할 때가 있어요. 일본인이 악역이니까 제가 봐도 좀 심하게 대사를 표현해야 되고, 그런 경우가 있죠. (웃음)

 

뿌     역사관이 부딪히는 정도의 작업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아무래도 서로 다를 테니까. 아직은 그런 작업을 하신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관심은 있으세요?

 

토모     일단 논쟁이 심하게 생길 수 있는 과격한 표현은 스스로 안 할 것 같아요. 별 도움이 안 되니까요. 역사 문제는 잘은 모르지만, 한국에서 일본 사람이 산다면 언제 어딘가에서는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문제예요. 이런 화제가 나오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되나, 고민을 할 때가 있어요. 십 몇 년 살면서 세 번 정도 생각이 바뀐 거 같아요. 5년 정도 살았을 때는 유감이었다, 미안하다고 답을 해야겠다고, 일본의 보수파와는 생각이 다르다는 걸 적극적으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0년 정도 지나고 바뀌었어요. 사과를 했을 때 용서를 해준다면 두려움 없이 사과를 할 수 있는데, 사과를 했는데도 계속 용서를 안 해준다면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시 바뀌었어요. 차라리 (한국인 입장에서) 쉽게 용서해주지 말자, 라고. 예를 들어 어떤 한국사람이 저라는 일본사람을 보고, “나는 널 보고 일본이라는 나라를 용서해준다.” 라고 한다면… 저를 보고 감동을 받았고, 뭔가 일본사람에 대한 개념 자체가 완전 달라졌다, 지금까지 미운 소리를 했었는데 이제는 안 하겠다, 라고까지 할 수 있는 큰 변화가 있을 때, 뭔가 충격과 감동을 받았을 때, 용서 못했던 뭔가를 용서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그런 순간이 온다면 용서를 구했던 사람이든, 용서를 하는 사람이든 똑같이 어떤 변화를 겪는 거죠. 쉬운 의미로서의 용서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용서라는 건 엄청난 충격과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한 거니까, 서로 각오해서 사과하고 용서를 얻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거기까지 간다면 사과와 용서가 의미가 생기는 것 같아요. 십몇 년 살고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뿌     연출로서의 관심에 대해 얘기 좀 해주세요.

 

토모     기본적으로 고전작품에 관심이 많아요. 한국에서는 고전 한다고 하면 좀 인기가 없는데, 몇 백 년 동안 몇 백 번 공연했던 걸 새롭게 느낄 수 있게 만든다는 게 연출력인 거잖아요. 셰잌스피어나 그리스 비극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어떤 뜻도, 의미도, 구제도 없는 상태에서 주인공들이 비극적으로 죽거나 파국을 맞이하게 돼요. 어쩌면 악의를 갖고 있는 신의 인형같이 보이죠. 그런 작품을 현대에 공연하기가 되게 어려운 게, 거기에 뭔가 의미를 찾아야 되잖아요. 억울하게 죽었다고 해도 납득할 수 있는 의미를 찾아내고 싶은데 텍스트 자체에서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맥베스>의 주인공이 비극적으로 죽어야 되는데 자기가 납득해서 죽을 수 있는 그런 순간으로 만들어보자, 그려내 보자, 적극적으로 자기 죽음, 운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걸어갈 수 있는 그런 힘을 주고 싶어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관객들한테도 인생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거의 사고 같은 것이고 의미는 없어요. 거기에 강력한 드라마, 스토리가 입혀진다면, 그런 사건들이 고통스럽긴 하지만 되게 중요하고 피하면 안 되는 중요한 사건이 되는 게 아닌가,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이게 스토리텔링, 드라마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사물의 안타까움성>엔 진짜 사소하고 비굴한 사람들의 얘기가 나와요. 그런 사소한 인생 속의 작은 표정들을 가지고 신화적인 레벨까지, 무대 위에서는 되게 사소한 일상적인 일들을 그 순간에 신의 계시가 내려오는 것 같은 기적으로 그려낼 수가 있어요. 일상에서는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일들이 스토리의 힘으로 의미를 일궈낼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뭔가로 보여줄 수 있게 되죠. 우리의 삶에도 위로가 되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저는 연극은 예술 표현이라기보다는 사회봉사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반가운, 아주 오랜만에 먼 친척의 집에 온 거 같은 그런 분위기의 프러덕션, 극단이 됐으면 좋겠어요.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반갑고 우리 공연을 봐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그리고 관객들이 재밌었다, 만족스럽게 집에 돌아 갈 수 있게 해드리고 싶어요. 이 시대가 증오의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더 무서운 게 무관심이에요. 배우, 스탭과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서 사랑까지는 못할 수 도 있겠지만, 우리는 관객 여러분한테 관심을 갖고 있다, 관객 여러분들도 우리의 작품에 혹시 관심을 가져주실 수 있을까,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뿌     이 말 참 아름답네요.

 

토모     포장하는 거예요. (웃음)

뿌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데요. 덧붙이고 싶은 얘기 있으세요?

 

토모     이 시대에 연극에 대한 어떤 신뢰, 믿음을 다시 얻으려고 노력해야 되는 거 아닐까, 그러려면 아까 얘기했던 대로 우리가 관객한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공연을 보러오면 우리한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게. 그게 관객과 같이 살아간다는 뜻이 아닐까… 연극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봐주고 칭찬하고, 그런 마인드로는 이런 신뢰 관계는 회복이 안 돼요. 전 외국인이니까 조금은 객관적으로 이 사회를 볼 수 있는 입장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의 근본적인 어떤 형태로서 다시 연극을 바라봐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뿌     연극에 대한 생각을 이미 좀 얘기하셨지만, 그래도 연극데이트 공식질문이니까, 쯔카쿠치 토모한테 연극이란?

 

토모     어렵네요. 고마움인 것 같아요. 연극을 만약 안 했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교류도 못했을 꺼고, 누군지도 모르는 관객분들을 만날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요. 연극이 사람들을 만나고 연결시키는 지점에 있는 거잖아요. 그 자체가 저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거기에 대한 고마움.

16.6.14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