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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CLE VANYA

‘시골 시트콤’에서 ‘식탁 치정극’까지 무한변주

 

리뷰 l 연극 ‘바냐아저씨’ 두 편
 

연극 <바냐아저씨> 두 편이 서울 대학로 무대에 나란히 올려졌다. ‘거장’ 이윤택이 중견연극인 창작집단과 함께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일본인 연출가 쓰카구치 도모가 연출했다.

 

 

이윤택의 ‘바냐아저씨’

 

한국적 체호프 지향…희극성 더해
기주봉 등 중견배우들 보는 맛도

 

 

쓰카구치 도모 ‘바냐아저씨’

 

등장인물들 현대의 식탁으로 소환
이들 입 통해 서로의 관계 까발려

 

 

작품은 <벚꽃동산>, <세 자매>, <갈매기>와 함께 안톤 체호프(1860~1904)의 ‘4대 장막’으로 불린다. 19세기 말 러시아의 속살을 세밀화로 그려내, 4대 장막 가운데 가장 재미있다는 평가다. 셰익스피어가 삶과 죽음을 시적 언어로 표현했다면, 체호프는 일상과 내면을 현대적인 필치로 담담하게 그렸다. 체호프 연극의 인물들은 모두가 주인공인 것처럼 각자 뚜렷한 개성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먼저 <바냐아저씨>의 줄기를 훑어보자. 시골소녀 ‘소냐’와 그의 외삼촌 ‘바냐’는 농사를 지으며 시골 영지에서 산다. 그런데 소냐의 아버지인 교수와 새엄마 ‘옐레나’가 그곳에 눌러앉으려 내려온다. 바냐의 친구인 의사도 그곳에 자주 들른다. 어느 날 교수가 영지를 팔겠다고 선언한다. 25년간 뼈빠지게 일한 영지에서 쫓겨나게 된 바냐는 ‘꼭지’가 돌아버린다. 갈등은 영지 매각을 둘러싼 바냐와 교수의 대립을 중심축으로 하고, 미모의 옐레나를 둘러싼 바냐와 의사의 대립이 겹쳐진다.


 

체호프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바냐아저씨>는 무수한 변주가 가능하다. 먼저 이윤택의 <바냐아저씨>(2월6일까지 아트원씨어터 2관·왼쪽 사진)는 ‘시골 시트콤’이다. 이미 지난해 연희단거리패와 함께 올려 호평을 얻었던 대본이다. 이윤택은 ‘한국적 체호프’를 지향한다. ‘생각이 많고 복잡한’ 러시아인의 사고가 아니라 ‘음주가무를 즐기는 감성적인’ 한국인의 눈높이에 맞춘다. 거기에다 체호프가 강조한 삶의 희극성을 더해 ‘시골 시트콤’으로 체호프를 재탄생시킨 것이다.

 

이와 달리, 쓰카구치 도모의 <바냐아저씨>(2월7일까지 아름다운극장·오른쪽)는 ‘식탁 정치극’ 또는 ‘식탁 치정극’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나온 그는 등장인물들을 현대의 식탁으로 소환한다. 그리고 이들의 입을 통해 서로의 정치적 관계 또는 치정적 관계를 까발린다. 현실을 얘기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교수, 숲을 가꾸는 이상주의자이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알코올 중독자 의사, 힘겨운 노동 속에 꿈과 이상을 잃어버린 바냐, 그리고 젊고 매력적인 여성을 차지하려고 벌이는 ‘속물의 정치’, 곧 치정이다.

 

이윤택의 <바냐아저씨>에는 기주봉(바냐), 김지숙(옐레나) 등 내로라하는 중견배우들이 출연한다. 이들 배우를 무대에서 직접 만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매력적이다. 하지만 좀더 바란다면, 궁핍과 소외의 세월을 견뎌온 이 배우들이 이제 엄숙함보다는 ‘시골 시트콤’의 콘셉트에 걸맞게 좀더 발랄해졌으면 한다. 빵빵 웃음이 터질 때 객석과 무대가 모두 행복한 ‘한국적이고 희극적인 체호프’가 구현되기 때문이다.

 

반면 쓰카구치 도모의 <바냐아저씨>에선 배우들이 식탁에 꽁꽁 묶여 있다. 식탁은 소비 자본주의의 탐욕을 드러내는 장치이지만, 자칫 다양한 표현을 제약하는 족쇄가 될 수 있다. 이번 무대의 미덕은 되레 식탁 밖에 웅크리고 있다. 바로 지치고 상처 입은 바냐(송철호)의 퀭한 눈이다. 후기 산업사회의 팍팍한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눈이고, 신도림역과 광화문광장에서 어깨를 스친 갑근세 납부자의 눈이기도 하다.

 

 

손준현 기자  

(한겨레  2016.2.1)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728884.html#csidx5214a541f8c4e89af2ec3f0f57f028f 

[안똔 체홉을 만나다] 15. 자본주의 만난 바냐는 어떻게 됐을까, 연극 ‘바냐 아저씨’

 

 

 

안똔 체홉의 4대 장막극 중 하나인 ‘바냐 아저씨’가 파격적으로 변신했다. 토모즈 팩토리의 연출가 쯔카구치 토모에 의해서다. 쯔카구치 토모는 러시아 19세기 바냐 아저씨를 2016년 식탁으로 데리고 온다. 그리고 연극 ‘바냐 아저씨’가 시작된다.

1897년에 출간된 체홉의 대표적인 주인공 바냐가 2016년으로 오면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기 전에, 그가 살았던 19세기 러시아는 어땠는지 알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19세기까지 전제 정치와 농노제가 존재할 정도로 근대화에 이르지 못했다. 1861년에야 알렉산드르 2세에 의해서 농노해방령이 이뤄졌다. 1890년대 러시아는 산업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공업화, 산업화, 철도부설 등을 이뤄나갔다. 자본주의가 날개를 펴려던 시기인 셈이다.

2016년 식탁으로 온 바냐는 19세기 러시아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그늘에서 벗어났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벗어나지 못했다. 토모즈 팩토리가 선사하는 연극 ‘바냐 아저씨’는 그걸 보여준다.

보여주는 형식이 재밌다. 바로 바냐와 바냐 일가를 ‘자본주의’로 상징지어 놓은 긴 식탁에 일렬로 앉히는 것이다. 공장 컨테이너 벨트에서 끊임없이 물건이 가공돼 나오는 것처럼 100분간 끊임없이 코스 음식들이 등장한다. 포도주를 날름거리고 스테이크를 토막 내며 완전한 ‘소비’를 이뤄내도 또 다른 음식이 소비되어 지기 위해 등장할 뿐이다. 결국 바냐와 인물들의 소비 행위는 ‘목적을 위한 소비’가 아닌 ‘소비를 위한 소비’로 전락하면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무기력한 인간의 자화상이 드러난다. 소비에 이미 전복당한 인간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음식을 소비하며 소비에 농락당한 인간들이 뱉어내는 대사들이다. 바냐와 인물들 사이에선 불륜, 애정, 배신, 복수, 갈등의 이야기들이 오간다. 바냐는 교수의 여자 옐레나를 사랑하고, 옐레나는 의사 아스뜨로프를 좋아하고, 쏘냐는 아스뜨로프를 사모한다. 바냐는 교수에게 배신당하고, 아스뜨로프에게도 배반당한다. 이들의 대화는 날이 섰고, 불꽃이 튄다. 맛있는 음식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 역시 음식이 소비되어 소멸되는 것처럼 화려하고 격렬하게 등장했다가 의미 없이 사라질 뿐이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식탁과 체홉 원작의 절묘한 앙상블이었다.

 

 

식탁을 중심으로 체홉을 해체

 

 

사실 ‘사실주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체홉의 대표작품 ‘바냐 아저씨’를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무대로 옮기는 것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우려도 있었다. 기우였다. 보통의 대중들이 ‘체홉 작품은 어려워’라고 말하는 지점은 토모즈 팩토리 만의 ‘연극성’으로 이해를 도왔고, ‘체홉 작품은 코미디야’라는 장점은 극화 시켰다. 그 지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일단 체홉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거나 연극학도가 아닌 일반 관객의 경우 체홉 작품은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체홉의 희곡엔 뚜렷한 주제나 갈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드라마의 전개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호흡을 이끌어 가며 관객에게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하지만 체홉 작품은 시작부터 끝까지 각 인물들의 파편화된 대화로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다. 한 장소에서 여러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떠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는 소리다. 연극 ‘벚꽃 동산’만 봐도 그렇다. 귀족 라네프스까야가 고향으로 돌아온 소회를 마구 토로하자 등장인물들이 거기에 동참하는 것 같지만, 늙은 집사가 뜬금없이 옛날이야기를 ‘툭’ 꺼내놓으며 대화의 흐름을 깨지게 만드는 식이다. 긴장이 형성될 듯 하다가도, 환기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꼭 훼방을 놓는다.

토모즈 팩토리의 연극 ‘바냐 아저씨’ 역시 파편화된 대화법이 도드라지긴 한다. 하지만 확실히 관객이 대화법에서 느꼈을 법한 괴리는 줄인 듯하다. 이유는 ‘식탁’에 있다. 작품에서 식탁은 물리적, 정서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일단 모든 등장인물들을 물리적으로 식탁에 모여 앉게 만듦으로써 인물간의 관계가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부녀관계, 불륜관계, 사랑관계, 모자관계 등 말이다. 정서적으로는 이들을 ‘식구’로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가족이 혈연으로 만들어진 집단을 말한다면 식구는 한집에서 살면서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을 뜻한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강한 정서적, 유대 관계를 지닌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식구’로 보이는 바냐와 인물들의 모습 때문에 추후 이들이 맞을 비극은 더욱 극대화 된다.

체홉의 초기 작품과 단편 소설을 본 사람들은 그를 ‘코미디 작가’라고 말한다. 사실 체홉 속에 내재한 코미디와 유머의 결정체는 비극으로 포장되는 여타 희곡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듯하다. 연극 ‘바냐 아저씨’는 이를 잘 활용한 것 같아서 기쁘다.

가령 원작 ‘바냐 삼촌’에는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고 있는 교수가 딸 소냐에게 약을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있는데, 소냐가 제대로 건네주지 않아서 교수가 타박하는 장면이 있다. 쯔카구치 토모 연출가는 원작의 장면을 식사 장면과 절묘하게 조합시킨다. 교수를 싫어하는 바냐가 소냐에게 모르는 척 소금을 집어주는 것으로 대체돼 웃음을 유발한다. 이 밖에도 늙음을 한탄하는 노교수와 엄마와 말싸움 하는 바냐의 모습이 ‘식사’ 장면으로 유쾌하게 해석됐다.

원작 ‘바냐 아저씨’의 부제는 ‘전원생활의 정경’이다. 흙냄새가 풀잎을 타고 풍겨 올 것 같은 러시아 전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고급스런 식탁 앞에서 만나본 바냐 아저씨도 애정이 간다. 체홉의 정서는 그대로 살리면서도 토모즈 팩토리의 기발함도 살려냈다. 공연시간이 얼마 없다. 공연은 7일까지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에서 볼 수 있다.

김세운 기자 (민중의소리 2016-02-05)

WOYZECK

[리뷰] 실험적인 설정에 박수를 그리고 공감. 연극 <보이체크>

 

 

 

"조용하다."

 

처형을 앞둔 보이체크가 남긴 한마디는 극한까지 간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독일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유작 <보이체크>가 일본인 연출가 토모 쯔카구치에 의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연극 <보이체크>는 게오르크 뷔히너의 작품으로 무대공연 사상 처음으로 노동자 계층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으로 미완성본으로 후세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작품은 '대학생 데이트 연극'은 아니다. 연극을 좀 보셨다하는 분들에게 난이도 있으면서 새로운 해석을 얻고 싶다는 분들에게 권하는 수준높은 작품이다.

'보이체크'는 생계를 위해 서커스장의 원숭이가 되어 관객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기도 하고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이발소를 운영하는 등 갖은 노력을 하지만 사회의 광기에 눌려 잃어버리는 나와 그로인해 분열되는 자아, 그것은 한편의 악몽같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현실을 벗어날 수 없었던 19세기 보이체크의 실제 형사사건을 극화한 이 작품은 구성적으로 새로운 희곡 기법을 보여주며 표현주의적 드라마의 효시가 되었고 전세계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공연되고 있다.


날선 목소리 그리고 실험적인 설정
무엇보다 이 작품은 날선 목소리, 무기력한 보이체크와 함께 실험적인 설정이 가득한 작품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재미있는 이야기 구조로 관객들과 감정을 나누거나 다양한 의상변화를 통해 눈요기를 주는 작품이 아니라는 점은 먼저 알려드린다. 다만, 새로운 무대디자인과 표현방식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밀도깊은 연기에 관객들은 몰입할 수 있는 점은 이 작품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먼저, 공연을 시작하면서 연출가의 간단한 안내로 공연이 시작된다. 한국어가 서툰 그는 일본인, 그의 이름은 토모 쯔카구치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배우 송철호는 그동안 극단 토모즈팩토리의 <사물의 안타까움성> 으로 데뷔해 <세월호> <바냐아저씨> 등을 연기한 배우로 이번 작품에서는 정신까지 해부되는 '보이체크'를 연기한다. 그의 눈빛과 몸짓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그의 인생과 사회의 폭력성을 표현해주고 있으며 공연 내내 모노드라마와 같이 끊임없는 대사와 연기에도 지치지 않고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 속에서 재미있는 것은 '3명의 원숭이' 의 등장이다. '보이체크'의 환상 속에 등장하는 3명의 원숭이(실제로는 두명의 남자배우와 한명의 여자배우)는 일본의 가부키를 연상시키는 하얀 얼굴분장을 하고 마임을 연상시키는 무브먼트로 (동작으로 표현하는 연기) 정신착란 상태의 '보이체크'를 괴롭히기도 하고 그 광기를 증폭시키며 작품의 긴장감을 높여준다.

 

각기의 에피소드, 그리고 결말


이 작품은 '보이체크'와 중대장, 써커스단 단장, 의사 그리고 그의 부인 마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주된 구조로 가지고있다. 하지만, 각 캐릭터 별의 갈등구조는 초반부터 납득이 가는 설정이라기 보다 불행한 결말을 위한 인위적인 설정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보이체크>가 기승전결로 연결된 한편의 스토리 라인을 갖기보다 '보이체크'를 중심으로 그가 겪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 결론적으로 얻어지는 불행한 최후를 표현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그렇다보니 어떻게 보면 스토리가 없을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스토리가 있을 수도 있는 작품인 것이다.

 

 

실험적인 설정이 가득한 작품


원작자체가 유쾌하거나 행복한 설정이 아니다. 하지만, 극단 토모즈팩토리는 조그만 소극장 안에서도 움직이는 무대를 통해 '보이체크'의 심적인 압박을 표현하고 각기 다른 조명을 통해 그가 겪는 변화를 보여주는 실험적인 표현에 과감성도 보였다.

 

표현주의 작품의 대표작인 <보이체크>를 <보이체크> 답게 해석한 용기있는 시도가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이 작품은 그 흔한 '데이트 연극' 도 대중성을 노린 그런 작품도 아니다. 하지만, 어느정도 연극에 조회가 깊은 관객들의 깊은 공감과 호감을 얻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식  (위드인뉴스  2017.5.17)

[리뷰]동아시아 젊은 연극의 상상력 뭉치다…'보이체크'

일본 연출가·몽골 무대미술가·한국 배우의 역동적 만남 

극단 토모즈 팩토리가 제작한 '보이체크'는 시각적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앞뒤로 움직이는 상자무대를 소극장 무대에 설치해 중·대극장에서나 느낄 수 있는 거리감을 주는 탓이다.

이런 공간적 착시감은 한·일·몽고 동아시아 3개국 젊은 연극인이 빚어낸 상상력과 열정의 결과물이다. 11일 서울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에서 개막한 보이체크에는 일본인 연출가 쯔카구치 토모, 몽골인 무대미술가 시네오드, 한국인 조명 이경은 등의 상상력이 담겨 있다. 여기에 송철호 배우가 심리적 압박감을 겪는 주인공 보이체크를 70분 내내 '내장을 빼낼 듯이' 열정적으로 연기해 관객의 오감을 자극한다.

연극 '보이체크'는 1824년 8월 살인죄로 독일 라이프치히 광장에서 공개 처형을 당한 실존인물 요한 크리티안 보이체크의 이야기다. 독일작가 게오르크 뷔히너는 실존인물이 불륜을 의심하며 아내를 살해하기까지 겪은 정신적 압박감을 꿈과 현실을 교차시켜서 써냈다. 

 

현실 속 보이체크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쉴새 없이 일한다. 그는 자원입대해 중대장의 이발사로 근무하면서 생활비를 더 벌기 위해 군의관의 생체실험에 참가하기도 한다. 그는 완두콩으로 하루 세 끼를 먹었을 때 일어나는 신체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소변을 제출한다.

중대장과 군의관은 보이체크를 정신적으로 압박하는 존재들이다. 중대장은 그를 업신여기며 막말과 구타를 반복하고 군의관은 신체 변화를 확인할 소변을 가져오라고 그를 다그친다. 여기에 그의 악몽 속에 매일 등장하는 서커스단장도 추가된다. 서커스단장은 보이체크에게 원숭이보다 뛰어난 재롱을 펼쳐보라며 채찍질한다.

이런 중압감은 가로 4.5m 세로 2m 높이 2m의 상자무대가 객석 쪽으로 간격을 4차례 좁혀오는 것으로 잘 표현된다. 상자무대는 무대 뒤 벽면부터 객석까지 7m에 불과한 소극장에서 처음 두 번은 70cm씩 다가오고 마지막 두번은 120cm씩 다가온다.

보이체크가 아내 마리와 군악대장의 불륜을 의심해 살해하는 후반부에 오면 상자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는 320cm에 불과하다. 보이체크가 살인을 저지르기 직전에는 이제까지 그를 괴롭혔던 존재들이 등장한다. 중대장, 군의관, 서커스단장과 원숭이들이 귀신처럼 상자무대의 뒷무대에 나타나 보이체크에게 살인을 권하는 장면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괴하다. 21일까지. 입장료 2만원. 문의. (070)4185-4524.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2017-05-16

[리뷰]부조리에 굴복해 아내 살해한 남자는 죄인인가? 연극 ‘보이체크’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가 쓴 희곡 ‘보이체크’는 가난한 병사 보이체크가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다가 정신착란으로 아내를 살해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뷔히너가 24살에 요절하는 바람에 미완성 희곡으로 남아 있다.

쯔카구치 토모 연출가의 연극 ‘보이체크’는 보이체크가 사형대 위에 오르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죽음 앞에 선 보이체크의 모습은 체념한 듯, 억울한 듯, 알 수 없다. 도대체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할 무렵, 연극은 그간 그가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보여준다.

무대 위에 드러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부조리한 사회(환경)와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이다. 토모 연출가는 그 사회의 역겨움과 무방비 상태의 인간을 연신 충돌·대치시키면서 현실적인 ‘악몽’을 그려나간다.

보이체크가 ‘철커덩 철커덩’ 쇠사슬을 잡아당길 때 마다 현실 위에 뿌리 내린 악몽이 시작된다. 보이체크의 상사인 중대장이 나타난다. 중대장은 시도 때도 없이 보이체크를 괴롭힌다. 입으로 도덕을 운운하지만 중대장의 행동은 폭력으로 가득하다. 위선적이다.

 

중대장의 폭력에 지친 보이체크는 또 다시 쇠사슬을 돌린다. 무대 위에 나타난 의사도 중대장과 다를 것 없다. 의사는 보이체크를 실험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보이체크에게 하루 몇 알의 완두콩만 먹게 하고 실험을 이어나간다.

중대장과 의사는 부조리한 사회를 상징한다. 중대장과 의사는 보이체크에게 계속 인간으로서의 ‘도덕’에 대해 운운한다. “보이체크 네 놈한테는 도덕관념이 결여돼 있어”, “당신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모럴(moral.도덕)’도 없냐”고 비난한다. 하지만 정작 도덕이 결여된 행동을 하는 것은 중대장과 의사다. 이러한 악몽이 끝나면 보이체크는 또 시달린다. 또 다른 악몽이 시작된다. 사악한 서커스 단장에 의해 동물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악몽의 연장선상에서 문득 묻게 된다. ‘왜 저들은 인간으로서의 도덕을 운운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도 인정해 주지 않는 걸까’ 하고 말이다. 사회적 부조리, 잔인한 환경, 이중 잣대는, 보이체크는 물론이고 관객마저도 혼란스럽게 만든다. 결국 이것들은 보이체크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병들게 만든다.

우리는 부조리하고 잔인한 사회의 굴레도 만나게 되지만, 그 아래에서 한 없이 무기력하고 나약한 소시민의 형상도 만나게 된다. 보이체크를 통해서다. 그는 중대장의 이중 잣대, 불합리에 대해서 제대로 된 항변 한번 못한다. 또한 자학 수준에 가까운 생체 실험에서 이탈하거나 인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다. 서커스 무대에서는 동물이길 자처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결국 긴 가난이 할퀴고 간 육체적 피폐와 사회가 생채기 낸 정신적 혼란으로 보이체크는 아내를 살해한다.

 

연극 ‘보이체크’는 아내가 군악대장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든지, 보이체크와 나머지 인물의 도덕성에 대해서 운운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잔인한 사회적 환경과 무기력한 소시민 그 사이에 놓인 우리를 발견하도록 만들어 준다. 그 경계선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그 사회에 일조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보이체크와 닮아 있는지 사색하게 된다. 사색이 끝난 뒤, 잔인한 사회와 부끄러운 자화상을 맞닥뜨리게 된다. 연극 ‘보이체크’ 상연시간은 나와 우리의 사회를 만나게 해주는 시간이다.

보이체크가 연신 돌리고 돌려야 했던 쇠사슬 소리가 상연 후에도 귓가를 울린다. ‘철커덩 철컹’. 무대 밖으로까지 이어지는, 끝나지 않는 소리다. 사회의 부조리와 불행의 연장선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

작품의 주제와 줄거리는 무겁지만 주제를 수식하는 연극성은 왁자지껄하고 경쾌하다. 동시에 여운은 깊고 길다. 공연은 오는 5월 21일까지 소극장 혜화당에서 볼 수 있다. 쯔카구치 토모 연출가. 심영민, 송철호, 전운종, 서정식, 김수정, 김보경, 강민규, 문지홍 등이 출연한다.

 

김세운 기자 (민중의소리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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